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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군사반란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가

by 쁘리v 2021. 5. 19.

1980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고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집권 하면서 군사반란에 성공하게 됩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시위가 벌어지고, 광주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완전히 봉쇄하여 학생들, 시민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무엇인지 이제는 젊은 세대들도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직도 발단의 전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포스팅합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 민주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분명 우리의 역사는 정확하게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참 아픈 역사들이 많은데,
오늘은 그중에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기는 1980년 5월 18일 전후로 발단되었습니다.
정말 얼마 되지않는 이야기입니다. 그 시기에 계셨던 부모님 세대들도, 철저하게 광주 외 전남 이외의 지역으로는
알려지지 않기 위해 경계를 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계시는 분들도 많다는 게 가슴이 아팠습니다.

광주에서 그지역에서만 열심히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게 한나라 안에서 말이 됩니까.

이해가 어렵다면 영화 택시기사를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확실히 역사내용은 영화로 이해하기가 저도 쉽다고 느꼈습니다.

자 그럼 광주민주화 운동이 왜 일어난 것일까?
군사정권이 바뀌면서 일어났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노태우를 중심으로 신 정권 세력이 일어나면서
사건이 발단 되었습니다.

광주에 전남대 조선대 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전남도청 전남대 앞 등등으로 함께 모여 계엄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 시기에 우리 학생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민주화 운동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빈손으로 싸웠습니다.
총에 맞아 죽고 고문당해 죽고, 정말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되어야 할 역사입니다.

그 시기에 힘들게 약 10을 가량 광주에서 맞서 싸운 분들, 그리고 그분들을 돕기에 주먹밥을 만들어 날랐던 시민들,
서로 살기 힘들었을 그 시절에 광주시민들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같이 광주를 지키고 지원했습니다.

현재 광주에 가보시면 그날의 총상의 기억이 있는 전일 빌딩도 보실 수 있으며
민주화 운동 기념관과 구 전남도청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니 한 번쯤 가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겠습니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그날의 대학생 및 광주시민들은 우리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왜 정확하게 알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은 왜곡하고 폄하하려는 세력들이 아직도 있으며 뉴스에서만 봐도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며 부르는 곡에 재창을 하지 않는 의원들을 보고, 그날의 폭동이라며 단순하게 의미를 협소시키는 경우들을 매체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광주에 가신다면 518 기념문화센터를 가보시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면 그날의 있었던 학생들의 일기, 그리고 소지했던 물건들 그날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같이 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되었으며 그 당시에 있었던 뉴스 화면 자료 기자들의 기사 수첩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숙연해질 수밖에 없고, 그날 돌아가신 분들 정말 정말 기억하겠습니다.
사진 이름 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디 편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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